한 무제, 서역을 향해 길을 열다
“서역으로 가는 길은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라, 두 세계가 처음으로 대화를 시작한 통로였다. — 余英時, 하버드대학교 중국사 교수”
기원전 141년, 16세의 나이로 한나라 제7대 황제에 오른 유철(劉徹)은 즉위 당시부터 남다른 야심을 품고 있었다. 할아버지 문제와 아버지 경제가 황로 정치로 국력을 회복하는 동안, 젊은 황제는 오랫동안 한나라를 위협해온 흉노를 완전히 제압하고 동아시아 패권을 확립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키웠다.
기원전 138년, 한 무제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직 포로 출신의 낭관 장건(張騫)을 대월지 왕국으로 파견했다. 목표는 단순했다. 흉노에게 멸망당하고 서쪽으로 이주한 대월지를 설득하여 흉노를 동서에서 협공하는 동맹을 맺는 것이었다. 장건은 100명의 수행원과 함께 장안을 떠났지만, 출발하자마자 흉노에게 붙잡혀 10여 년을 포로로 보내야 했다.
놀랍게도 장건은 탈출했다. 흉노 여인과 결혼하여 아들까지 얻었지만 황제의 명을 잊지 않았던 그는 탈출에 성공한 뒤 대완(페르가나)을 거쳐 대월지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미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던 대월지는 한나라의 동맹 제안을 거절했다. 동맹은 실패했지만 장건이 가져온 서역의 지리, 물산, 풍속에 관한 정보는 한 무제에게 새로운 세계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기원전 119년, 위청과 곽거병의 대규모 원정으로 흉노를 북쪽으로 몰아낸 한 무제는 이제 막힘없이 열린 서역 통로를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장건을 다시 서역으로 파견했다. 이번에는 300명의 사절단과 함께 대완, 강거, 대월지, 대하 등 서역 각국에 외교 사절을 동시에 보내 다자 외교망을 구축했다. 실크로드는 이렇게 공식적으로 열렸다.
장건의 두 번째 원정이 가져온 결과는 외교적 성과를 훨씬 넘어섰다. 한혈마(汗血馬)로 유명한 대완의 천마, 포도와 석류 같은 새로운 과일, 호리병과 핵도(胡桃, 호두) 등 중앙아시아의 산물이 장안에 쏟아져 들어왔다. 동시에 중국의 비단, 도자기, 칠기, 철기가 서역으로 흘러나갔다. 상품만이 아니었다. 사상과 종교, 기술과 예술이 이 길을 타고 동서를 오가기 시작했다.
한 무제는 서역 경영을 체계화했다. 기원전 111년 남월을 정복하여 해상 실크로드도 열었고, 기원전 60년에는 서역도호부를 설치하여 실크로드를 제도적으로 관리했다. 그의 치세 54년은 한나라를 당대 세계 최강의 제국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끝없는 군사 원정으로 재정을 소진시켜 후대 쇠퇴의 씨앗을 뿌리기도 했다.